[조선일보 2012.03.23일자] 조재연 신부, 20년 사목 경험 담아 '청소년 사전' 출간
작성자 : 햇살지기l작성일 : 2012-03-23 10:17:54l조회수 : 8878
"아이들 사전에서 '부모'는 답답하고 미운 양반"
[조재연 신부, 20년 사목 경험 담아 '청소년 사전' 출간]
학생 상담 편지 1만통 답장… 편지 속 내 이름은 '고길동'
"내 자식 안다"는 부모 착각, 아이들 상처 키우는 지름길

"저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면서 혼자 해결하려고 애쓰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상처가 더 깊어지기 전에 빨리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요. 두려워서 머뭇거리다 때를 놓치는 것보다 더 큰 위험은 없다고요.

" 조재연(50) 비오 신부(서울 무악재 성당 주임)는 20여년간 청소년들과 함께 살아왔다. 1996년부터 10년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청소년 사목 지도신부로 일했다. 아이들의 고민을 담아 매달 6000부쯤 펴내는 쪽지 월간지 '청소년의 햇살'은 이번 달에 180호가 나왔다. 청소년·학부모 상담, 청소년 사목을 위한'햇살청소년사목센터' 소장도 맡고 있다.
 



20년 청소년 사목 경험을 담아 최근 책‘청소년 사전’을 펴낸 조재연 신부는“부모는‘내 자식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착각을 먼저 버려야 아이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이태룡 기자

 
조 신부가 상담 사례를 23개 주제어로 엮은 '청소년 사전'(마음의 숲)이란 책을 펴냈다. 부제는 '부모와 아이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표〉 이번 주초 서울 혜화동 햇살청소년사목센터에서 만난 그는 "아무리 인격적인 부모도 자식에 대해서는 장님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내 자식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왕따를 당할 애도 시킬 애도 아니다'는 건 부모들만의 착각일 뿐"이라고 했다. 

 ◇"내 자식 내가 잘 안다"는 맹신

 "아이는 끊임없이 성장하는데 부모는 옛날 기억에 머물러 있어요. 아이의 세계를 놓치고 그 갈증을 읽어내지 못하면서 미루어 짐작해 버리죠. 소통이 막히면 대화는 늘 겉돕니다." 조 신부는 서울의 한 본당 보좌 신부로 있을 때 도둑질 하다 파출소에 잡혀간 아이를 만나러 그 엄마와 함께 갔던 적이 있다고 했다. "재래시장에서 좌판 장사를 하며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분이었어요. '내 마음을 아느냐'고 절규하는데, 아이는 냉담하게 '몰라요' 하더군요. 정말 모르는 거예요. 엄마는 '그래도 다 알아주겠지'하고 믿어버렸는데…." '일진'들에게 담배와 본드를 사서 바치다 자기까지 중독이 된 것 같다는 고1 남학생은 "말해 봐야 일만 커지고 해결도 안 되고, 부모님 걱정만 시키고 보복당할까 두려워" 도움 요청을 하지 못했다.

◇"널 위해 기도할게" 1만여통 답장

이런 아이들은 조 신부의 상담 캐릭터인 '고길동 신부'〈캐릭터〉에게 편지를 쓴다. 만화가 김수정 씨의 동의를 얻어 만화 '둘리'에서 따온 캐릭터다. "아이들에겐 '신뢰할 만한 익명의 존재'가 필요해요. 종교와 상관없이 신부가 '널 위해 기도할게'라고 해주는 것 자체가 큰 정서적 버팀목이고요." 



 지금까지 1만통이 넘는 상담 편지를 받아 일일이 답장했다. 엄마에게 애인이 생긴 걸 알아챈 여학생은 이렇게 썼다. '오늘 또 엄마 화장이 달라졌다. 저러고도 내게 부끄럽지 않을까. 엄마를 저렇게 만든 아빠가 밉다. 나도 엄마를 닮게 될까 두렵다….' 조 신부는 "부모의 부정적 모습이 너의 미래가 아니다. 너는 선택할 능력이 있다. 네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겠다고 선택해야 한다"고 답장을 썼다.

◇"아이의 마음을 잃지 마세요"

 
아이들의 답장은 조 신부가 묵묵히 이 일을 계속하게 해주는 큰 힘이다. 두세달 혹은 6~7년이 지난 뒤에야 "어두운 터널을 통과할 때 날 믿어준 신부님이 있었다는 게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내오는 아이들도 있다. 젊은 시절 가난한 사람을 위한 사목을 꿈꿨던 조 신부는 "이 시대 가장 가난한 사람은 우리 아이들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성(聖) 요한 보스코는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십시오'라고 했어요. 세상이, 학교가 험해질수록 부모와 교사들이 항상 가슴에 새겨야 할 말입니다."

이태훈 기자

기사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3/22/20120322032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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