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가족과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율리아에게
작성자 : 고길동신부l작성일 : 2007-06-21 17:27:02l조회수 : 7844
안녕하세요 고길동 신부입니다. 율리아의 편지 잘 읽어보았습니다. 개인적인 얘기들을 터놓고 얘기해줘서 고마웠습니다. 혹시나 더 비밀스럽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때는 여기 공개 상담실 말고 옆에 있는 비밀 상담실을 이용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율리아의 편지를 읽으면서 제 어린 시절의 일기장을 다시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화나는 일이 있으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비밀 일기장을 펴들어 뭔가를 끄적였었거든요. 거기에는 기쁘고 행복한 일들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환호를 담기도 했고, 그 위로 우박같이 큼지막한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율리아의 편지처럼 몹시 화가 나고 분이 치밀었을 때 쓴 일기도 있었을 거예요.   제가 일기 얘기를 하는 이유는 "그것을 다시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생각을 줄줄 풀어낸 일기장을 나중에 다시 읽어봤을 때, 또 느낌이 다르거든요. 일기장 속에서 한없이 커지거나 작아진 어떤 느낌들은 사실 그렇게 크거나 작지 않고 견딜 수 있을만큼 적당한 느낌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율리아가 "부모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습니다"라고 적었을 때 느꼈던 그 분한 마음이 편지를 다시 읽었을 때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저도 율리아의 답답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나눌 수 없는 가족들.. 이유없이 구박하는 아빠.. 얄미운 동생.. 율리아는 편지를 통해서 "원인은.. 물론 저지만요ㅋ"라고 했지만 그 갈등의 책임이 모두 율리아에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율리아만 잘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갈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주 조심스럽게 율리아에게 묻고,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율리아는 아빠와 엄마에게 율리아가 겪은 일을 얼마나 얘기해줍니까? 또 율리아는 아빠와 엄마의 일에 대해 얼마나 듣습니까? "저한테 막 뭐라고 하는 부모님"이라는 표현 앞에 "아무것도 모르면서"라는 말을 붙인 걸 보면 그렇게 대화가 충분하고 원활히 이뤄지는 것 같지는 않군요. 율리아의 편지를 읽고 안타까웠던 점은 두가지였는데, 먼저 율리아가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있다는 것, 그리고 율리아와 율리아의 가족들 간에 충분한 대화가 오가지 않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주 조심스럽게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그거예요. 율리아가 율리아의 부모님께 먼저 다다가보는 것은 어떨까.. 이것을 조심스럽게 부탁하는 이유는 율리아 역시 마음에 상처를 입었고, 또 상처에 개의치 않는다고 해도 그러려면 대단히 어른스러운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일 겁니다.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낮추고 율리아의 속내를 솔직히 아빠 엄마께 얘기해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처음부터 생각한대로 잘 통하진 않겠지만 율리아의 노력이 몇 번 계속된다면 부모님도 마냥 율리아를 무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율리아는 소중한 아이입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모든 것은 제 나름대로의 가치를 갖고 있고, 율리아는 그 중에서도 하느님이 아주 사랑하시는 아이일지 모릅니다. 아니, 그럴 거예요. 몇 마디 아픈 말들을 듣고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기도 중에 율리아를 기억할 거예요. 율리아의 짜증과 분노가 곧 기쁨과 행복과 웃음으로 바뀌기를 바라겠습니다. 전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또 편지 주세요. 고길동 신부로부터 ps 궁금한 게 있는데, 율리아는 컴퓨터로 주로 어떤 것들을 하나요? 버디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