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無를 꿈꾸는 친구에게
작성자 : 고길동신부l작성일 : 2007-06-13 19:36:23l조회수 : 8605
안녕하세요, 고길동 신부입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어머니와 갈등을 겪고 있군요. 그런데 좀 더 정확히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고민의 핵심이 무신과 유일신 사이에서의 방황인지, 아니면 종교적 담론이라는 껍데기를 둘러쓴 친구와 친구 어머니 간의 갈등인지를 말이지요. 두가지 가능성 모두 인정할게요. 친구가 보내준 편지로만 봐서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친구 자신도 고민의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 수 있어요. 고민을 통해 신앙은 한순간 무너져버리기도 하고 불쑥 커버리기도 합니다. 그 중간에서 친구가 상처를 입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그런 종류의 고민을 겪었던 사람들일 테구요. 일단 나는 친구가 친구의 어머니와 진지하게 얘기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친구 말대로 억지로 끌려가서 엎드려 자는 것보다, 뭔가 다른 것을 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뭔가 다른 것, 어머니와 생각을 나눠보세요.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하느님이라는 존재'는 인정하고 있군요. 말장난 같지만, "인간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이라는 존재는 있을 것이다." 정도의 해석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서요. 복사 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하느님을 믿고 따르면서' 가졌던 느낌들을 되새겨보세요. 자꾸만 과학으로 하느님을 낱낱이 분석하려고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다른 영역의 현상은 그대로 두는 것이 좋습니다. 역사를 통해 종교가 과학을 인정하지 않고, 과학이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을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현상은 모두 왜곡되었고, 갈등은 생산적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엔 교황청도 공룡이 살았다는 걸 받아들이고 있어요. 친구의 고민은 충분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 고민이 신앙의 성장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구요. 고민의 핵심이 무엇인지 더 고심해보고, 어머니와 더 얘기를 나눠보고, 그리고 나서 다시 편지를 줬으면 좋겠습니다. 친구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꼭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럼 답 기다릴게요. 사랑합니다. 고길동 신부가